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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훙장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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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상세정보
자료유형 : 단행본
ISBN : 9788996648246 
분류기호 : 952.03092 
서명/저자사항 : 리훙장 평전/  량치차오 지음;  박희성;  문세나 [공]옮김. 
원서명 : 論李鴻章  
발행사항 : 서울:  프리스마,  2013. 
형태사항 : 309p.;:  삽화;  23cm. 
일반주기 : '리훙장'은 '李鴻章'으로 , '량치차오'는 '梁啓超'로 표준표목함 
개인저자 : 양계초
개인저자 : 박희성
개인저자 : 문세나
분류기호 : 952.03092 
언어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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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근대 대사상가 량치차오의 눈으로 바라본 리훙장 평전. 리훙장(李鴻章)은 19세기 중국 근대사에서 군사가, 정치가, 외교가로서 40여 년이나 실권을 장악한 인물이다. 19세기 중국 근대사의 거의 모든 일이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할 정도로 리훙장은 19세기 중국 근대사와 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리훙장의 삶은 격동의 19세기 중국 근대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리훙장은 한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리훙장은 19세기 후반 청나라 대신(大臣)으로서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고 대조선 정책을 주도한 인물로, 처음에는 소극적인 불간섭정책을 펴나가다가 임오군란 수습 과정부터 실질적인 간섭정책으로 전환했고, 이후 위안스카이(袁世凱)를 파견하여 조선 정부의 내정 및 외교에 적극적으로 간섭했다.

    일본과 톈진조약을 맺고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운동에 개입해 조선에 군대를 파견함으로써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일본과 청일전쟁을 치르고 일본에 패해 그동안 쌓아온 군사적 명성을 하루아침에 잃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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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 | 리훙장 다시 읽기 | 4
    지은이 소개 | 량치차오는 누구인가? | 8
    지은이의 말 |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라” | 12

    제1장 서론 | 과연 리훙장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간웅인지 호걸인지 논하기 전에 그가 처한 위치와 상황을 먼저 이해하라 | 23
    비스마르크와의 만남 | 24
    중국 근대사와 뗄 수 없는 중요한 인물 | 26
    시대가 만든 영웅인가, 시대를 만든 영웅인가? | 29

    제2장 리훙장의 위치 | 리훙장을 위한 변호
    근대 중국의 권신 | 35
    권신의 네 가지 유형 | 37
    중국에서 전제정치가 발달한 중요한 두 가지 원인 | 42
    만주족 관원 일색인 청조의 몇 안 되는 한족 중신 | 45

    제3장 리훙장 등장 이전의 중국의 상황 |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
    밀려드는 열강, 혼란한 정국 | 57
    끝없이 이어지는 반란 | 61
    태평천국의 난 진압, 군사가로서의 명성 시작 | 64
    쩡궈판의 참모가 되다 | 70

    제4장 군사가 리훙장 상(上) | 시대의 총아, 태평천국을 평정하다
    태평천국의 위세가 절정에 달하다 | 75
    상승군의 창설 | 79
    쩡궈판의 상군, 안칭을 수복하다 | 81
    리훙장, 회군을 조직하다 | 84
    상하이 방어 성공, 지휘 통솔 능력을 인정받다 | 86
    태평천국의 근거지 난징을 토벌하라 | 88
    리훙장의 맞수 리슈청 | 89
    상승군 지휘관 버제빈 파면 | 96
    쑤저우 성 수복 | 100
    장쑤 성 남부의 태평군 평정 | 104
    난징 수복, 태평천국을 평정하다 | 109

    제5장 군사가 리훙장 하(下) | 치밀한 군사전략으로 염군의 난을 평정하다
    염군의 난 | 119
    동염군을 섬멸하다 | 122
    서염군을 섬멸하다 | 127
    그 스승에 그 제자, 장수들을 잘 다스리는 진정한 인재 | 131

    제6장 양무운동 시기의 리훙장 | 양무운동의 선구자, 진정한 중국 근대화에 실패하다
    양무운동을 주도하다 | 137
    강군 양성, 사라져버린 옛 꿈 | 142
    리훙장의 실패 원인 | 148

    제7장 청일전쟁 시기의 리훙장 | 군사가로서의 명성이 청일전쟁 패배와 함께 사라지다
    리훙장의 첫 번째 실책 | 159
    리훙장의 두 번째 실책 | 163
    리훙장의 세 번째 실책 | 168
    청일전쟁의 시작, 풍도해전과 아산전투 | 168
    황해해전 패배로 제해권을 상실하다 | 171
    평양전투, 청나라 해군에 이어 육군도 패하다 | 175
    청일전쟁 패배 이유 | 178
    리훙장의 열두 가지 책임 | 183
    “일본은 중국이 아니라 리훙장 한 사람과 전쟁을 한 것이다” | 185

    제8장 외교가 리훙장 상(上) | 굴욕적인 톈진조약과 마관조약을 체결하다
    톈진 교안, 리훙장이 처리한 첫 번째 외교 사건 | 193
    외교 처리 능력을 인정받다 | 195
    청일전쟁의 도화선 톈진조약을 체결하다 | 199
    마관조약 체결, 총상으로 얻은 평화 | 202

    제9장 외교가 리훙장 하(下) | 리훙장의 외교 역사는 곧 실패의 역사이다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힘을 빌려 일본에 항거하다 | 219
    랴오둥 반도 반환의 대가, 중러밀약 | 222
    리훙장의 유럽 순방, 실패로 끝난 수입 관세 인상 계획 | 227
    자오저우 교안 사건 | 229
    무산된 외국 차관 도입 시도 | 233
    중국을 차지하기 위한 열강들의 싸움 | 235

    제10장 한직에 있을 때의 리훙장 | 량광 총독 시절의 업적과 과오
    황허 치수 사업에 작지만 의미 있는 공헌을 하다 | 245
    범죄 현장에서 잡는 즉시 극형에 처하다 | 247
    도박을 권장하면서 세금을 거두다 | 247
    교활한 천주교 신자들에 맞서다 | 249
    “캉유웨이 일당의 기세를 진압하라” | 249

    제11장 리훙장의 말년 | 죽기 직전까지 국사를 걱정한 한 시대의 풍운아
    의화단 사건, 무술변법의 반작용 | 255
    당시 리훙장이 취할 수 있었던 상ㆍ중ㆍ하책 | 259
    열강 11개국과 신축조약을 체결하다 | 260
    러시아와 중러만주조약을 체결하다 | 264
    한 시대의 풍운아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 269

    제12장 결론 | 리훙장은 어떤 인물이었나?
    리훙장과 곽광 | 277
    리훙장과 제갈량 | 278
    리훙장과 곽자의 | 279
    리훙장과 왕안석 | 280
    리훙장과 진회 | 281
    리훙장과 쩡궈판 | 282
    리훙장과 쭤쭝탕 | 283
    리훙장과 리슈청 | 284
    리훙장과 장즈퉁 | 285
    리훙장과 위안스카이 | 286
    리훙장과 메테르니히 | 287
    리훙장과 비스마르크 | 288
    리훙장과 글래드스턴 | 290
    리훙장과 티에르 | 292
    리훙장과 이이 나오스케 | 293
    리훙장과 이토 히로부미 | 295
    리훙장에 대한 일화 | 296
    리훙장에 대한 어느 일본인의 평론 |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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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字)가 탁여(卓如), 호(號)는 임공(任公)이며, 필명(筆名)은 음빙실주인(飮冰室主人)·음빙자(飮冰子)·만수실주인(曼殊室主人)·신민자(新民子)·소년중국지소년(少年中國之少年) 등등이다. 서구 열강의 침략과 대항의 최전방 지역이었던 광둥성(廣東省) 신후이(新會) 사람으로, 반경반독(半耕半讀)의 향신(鄕紳) 가정에서 태어났다. 동치(同治) 12년(1873), 즉 아편전쟁이 일어난 지 33년 뒤, 태평천국의 난이 평정된 지 10년 뒤, 서구의 충격이 한창 중국으로 물밀듯이 거세게 쳐들어오던 시기였다.

    량치차오는 중국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중요한 근대 전환기를 살면서 끊임없이 시대를 이끌어 간 대표적 지식인이었다. 신문·잡지 및 교육을 기반으로 변법유신(變法維新)을 도모하고, 근대화된 서구 문명을 선전함으로써 폐쇄되었던 근대 중국에 새로운 개혁의 기풍을 일으켰으며, 특히 탁월한 계몽주의 사상가·정치가·언론인·교육자·문학가로서 중국 문화사(文化史)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일반적으로 량치차오의 생애는 크게 수학(修學) 시기(1873∼1894), 유신 운동과 계몽 활동 시기(1895∼1903), 입헌 추진과 정치 재개 시기(1904∼1917) 그리고 강학(講學)과 저술 시기(1918∼1929) 등 네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의 인생 역정은 한마디로 중국의 근대화를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정계에서 은퇴한 1917년 무렵까지는 주로 정치가로서 학술 활동을 병행하면서 자신이 말한 학자의 임무인 ‘세상을 깨우쳐야 한다(覺世)’는 사명감 아래 근대 중국의 신문화(新文化) 창도자·실천자로서 소임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1918년 이후로는 학술 연구에 전념하면서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傳世)’ 전통문화의 수호자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도 그 변화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1918년 이후의 작품도 일부 실었다.

    당시 캉유웨이는 선통제를 복위시켜 입헌군주제 형태로 청나라를 되살리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량치차오는 이를 비판하며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돤치루이(段祺瑞)에게 국제 사회 진입을 위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것을 적극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세력 있는 정치가인 돤치루이와 펑궈장(馮國璋)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한 후, 정치계를 떠난다.

    1918년 말, 유럽을 방문하여 유럽 사회가 안고 있는 각종 병리 현상을 직접 목격한 뒤 귀국하여 서양 문명이 이미 파산했음을 선언하기도 했다. 1929년 신장병으로 죽을 때까지 학술사업에 몰두했다. 문학, 사학, 철학, 불학(佛學)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음빙실전집(飮氷室全集)』, 『음빙실총서(飮氷室叢書)』, 『청대학술개론(淸代學術槪論)』, 『중국근삼백년학술사(中國近三百年學術史)』, 『선진정치사상사(先秦政治思想史)』, 『중국역사연구법(中國歷史硏究法)』, 『중국문화사(中國文化史)』 등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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