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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15000
▼a 248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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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248023
▼a 박경리
▼a 그 형제의 연인들:
▼b 박경리 장편소설/
▼d 박경리 [지음].
▼a 서울:
▼b 마로니에북스,
▼c 2013.
▼a 470p.;
▼c 22cm.
▼a 형제
▼a 연인들
▼a 박경리
▼a 장편소설
▼a future2096
▼b 김희원
▼a 단행본
▼a 811.35
▼b 박14ㄱ
반세기에 걸친 기다림 끝에 세상 밖으로 나온 거장 박경리의 미출간작. 1962년 [대구일보]에 연재되었으나 반세기에 걸쳐 잠들어 있던 이 작품은 당시 신문 연재소설이 보여주었던 통속성과는 확연히 차별화된 리얼리즘 소설의 모습을 선보이며 박경리 문학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당시 신문 연재소설들의 한계였던 독자의 욕망을 대리만족시키는 스토리를 넘어 금기에 대한 도전과 극복의 의지라는 주제를 관철해나간다. 이는 작가 박경리가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삶에 대한 준열한 물음인 것이다.
의사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는 형 인성은 생에서 아무런 의욕과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집에는 히스테릭한 아내가 있으며, 부모와의 사이는 처음부터 시큰둥했다. 그에게 모든 일은 진부하고 지루하기만 하다. 형과는 반대로 모든 일에 의욕적인 주성, 그는 이혼 경력이 있는 친구의 누나를 사랑하는 금기에 빠진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송애와 집안에서 결혼 이야기가 있지만 주성에게 송애는 안중 밖이다. 그러나 열등감에 싸여 있는 혜원은 주성으로부터 달아나려고만 한다.
이 작품의 가치는 사랑을 다루되 사랑의 성취 과정을 보여주기보다 사랑을 위한 희생에 대하여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라는 점에 있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 관습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기성과 열등의식, 동정과 집착 등의 문제들을 진정한 사랑을 위해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묻는다. 진정한 사랑의 외적인 장애물로 여겨지는 관습의 문제마저 인간의 내적 성숙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뜻대로 사랑을 이루려 하는 이보다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자의 고귀함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
작품 속 두 형제가 비틀리고 뒤틀린 그들의 사랑을 행하는 방식은 처절하다. 현실성을 잃지 않는 입체적인 등장인물들과 긴장감 있게 전개되는 박경리 특유의 전개가 살아 있는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거장의 면모를 다시 한 번 각인시켜줄 것이다.
1. 어느 날의 환자
2. 사랑하는 마음
3. 마르지 않는 샘
4. 상한 비둘기
5. 애증
6. 홍염
7. 창변에서
8. 와중
9. 애정의 피안
10. 산을 바라보며
11. 분기점
본명은 금이(今伊).1926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하였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 등이 <현대문학>에 실리면서 등단했다. 이후 1959년 <표류도>, 1962년 <김약국의 딸들>, 1964년 <파시>, <시장과 전장> 등의 장편을 발표했다.
<토지>는 1969년부터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하여 1972년 9월까지 1부를 집필했다. <토지> 2부는 같은 해 10월부터 1975년 10월까지 <문학사상>에 3부는 1978년부터 <주부생활>에 4부는 1983년부터 <정경문화>와 <월간경향>에 각각 연재했다.마지막 5부는 1992년부터 <문화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1994년 8월 15일 마침내 대하소설 <토지>의 전작이 완결되었다. 25년에 걸쳐 원고지 4만 장 분량으로 탈고된 것이다. 한말로부터 식민지 시대를 꿰뚫으며 민족사의 변전을 그리고 있는 대하소설 <토지>는 탈고 전에 이미 한국문학의 걸작으로 자리잡았고 박경리는 한국문학사에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거봉으로 우뚝 섰다. 이 소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1979년과 1984년에 각각 한국방송공사에서, 2004년에 SBS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그녀가 1980년부터 1994년 8월 15일까지 원주시 옛집에서 <토지>를 지은 일을 기념하기 위해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토지문학공원이 조성되었고,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에 있는 토지 문화관에서 집필생활을 하였다.
2007년 7월말 폐암이 발견됐으나 고령을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였다. 하지만 병세가 악화되어, 2008년 4월 4일 뇌졸중 증세까지 나타나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하였다. 입원 후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2008년 5월 5일 오후 2시 45분 경 숨을 거뒀다. 정부는 박경리의 사망 직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결정하였다.
제3회 신인문학상
1965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
월탄문학상
1992 보관문화훈장
1994 올해의 여성상
1994 유네스코 서울협회 선정 올해의 인물
1996 제6회 호암상
1996 칠레정부 선정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기념메달
1997 제3회 용재석좌교수상
1955 평화신문 서울신문 기자
1995 96년 문학의해 조직위원회 위원
1996. 02 한국일보 칼럼 ''생명의 아픔'' 연재
1996. 05 토지문화재단 창립 이사장
1996. 11 제1회 한중청년학술상위원회 위원
1997. 04 호암재단 이사
1999. 04 대통령자문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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